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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1/09 Punk77 STEVE JONES - Mercy(1987, MCA)
- 2009/04/08 Punk77 CHEQUERED PAST - Underworld(1984)
- 2007/05/12 Punk77 THE SEX PISTOLS
- 2007/05/04 Punk77 SILVERHEAD
- 2007/05/03 Punk77 THE PROFESSIONALS
- 2007/04/28 Punk77 THE AVENGERS
Steve Jones의 첫번째 솔로앨범「Mercy」(1987)의 동명 타이틀 12인치 싱글로 공식적으로는 발매되지 않았고 프로모션용으로만 배포됐다. 이 곡은 TV 시리즈 〈Miami Vice〉에피소드에 삽입되면서 인기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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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ve Jones(ex Sex Pistols),
Clem Burke(ex Blondie),
Nigel Harrison(ex Blondie),
Tony Sales(ex Utopia, Tin Machine)
Chequered Past의 결성은 Blondie의 베이스 연주자였던 Nigel Harrison이 Steve Jones에게 밴드결성 제의를 하면서 시작됐다.(구애수준으로 알려지고 있음.) 화려한 멤버 구성에도 불구하고 앨범은 평범한 하드록 이상의 결과물을 내지 못했고 Steve Jones가 Michael Des Barres에게 악담을 퍼부으면서 화끈하게 그 끝을 맺고 말았다. (Sex Pistols의 진정한 악동은 Steve Jones였다는 사실이 다시 한번 증명된다.) - 출처 PUNKNET77
밴드 해산후 Michael Des Barres는 Power Station으로, Tony Sales는 David Bowie와 Tin Machine을 결성한다. EMI에서 발표된 유일한 앨범은 2000년대 들어 마이너 레이블을 통해 여러번 CD로 재발매됐다.
http://www.creemmagazine.com/_site/BeatGoesOn/ChequeredPast/FromAChequeredPast0512.html을 방문하면 1985년 당시 Creem 매거진의 기사를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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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여름, Malcolm McLauren의 진두지휘아래 출발했다.
그룹은 잠시동안 밴드의 절친한 친구이기도 한 Wally Nightingale을 리드 보컬리스트로 맞아 Swankers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다 Sex Pistols로 개명하면서 Johnny Rotten(vocals), Steve Jones(guitar), Paul Cook(drums), Glen Matlock(bass)의 안정된 라인업을 유지했다.
1976년, 런던을 중심으로 부정기적인 연주활동을 갖는데 Malcolm McLaren이 상업적으로 잘 포장한 헤어스타일, 찢어진 티셔츠, 안전핀 등의 펑크패션은 금새 10대 팬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얻는다. 밴드의 공연은 항상 폭동이 끊이질 않았는데 100 Club Punk Rock Festival에서 Damned의 공연중 시드 비셔스가 날린 맥주병이 깨지며 한 소녀가 눈이 머는 사고가 발생하면서 정점에 달한다.(실제로 그런 사고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그 사실이 불분명하다. 또 하나의 시드 신화라는 얘기도 있다.)
밴드는 곧 EMI와 계약하고 "Anarchy In The UK"를 발표하며 공식적으로 데뷔한다. 한편 Sex Pistols는 런던의 주말 TV연예 프로그램인《Today》에 출연해 네개의 철자로 된 말들을 마구 내뱉는데 이 사건은 다음날 런던의 신문 헤드라인으로 일제히 기사화 된다.(섹스 피스톨즈 TV에서 'FUCK'이라고 하다!)
이로 인해 그룹의 'Anarchy' 투어는 가느 곳마다 취소되기 일쑤였고, 레코드 판매상들은 그들의 앨범 판매를 거부했다. "Anarchy In The UK"는 차트 38위를 기록했으나 오래지 않아 EMI와의 계약을 해지당한다. 1977년, Matlock이 Sid Vicious로 교체되면서 다음달 버킹검 궁전 앞에서 A&M과 계약을 맺게 되는데 1주일 후 A&M은 계약을 취소하고 Malcolm은 단 1주일만에 계약금 40,000파운드를 챙긴다.
이후 당시에는 소규모 레이블이었던 Virgin과 계약을 맺고 "God Save The Queen"을 여왕의 즉위 25년 기념일인 Queen's Jubilee에 발표한다. 라디오 주간 방송들은 일제히 이 곡을 방송금지 시켰지만 NME차트 1위를 기록하고 Johnny Rotten과 그룹 멤버들은 길거리에서 극우주의자들에 의해 폭행을 당하기도 한다. 세번째 싱글 'Pretty Vacant'(Glen Matlock의 작품인)는 금새 Top10에 진입한다. 그리고 그해 겨울 "Holiday In The Sun"이 히트를 기록하면서 모두가 기다리던 데뷔앨범《Nevermind The Bollocks Here's The Sex Pistols》가 발매된다.
이후 실패 투성이의 미국 투어와 함께 다큐멘터리 필름의 제작에 들어가는데 멤버들의 관계에도 서서히 금이 가기 시작한다. 1978년 Rotten은 샌프란시스코에서의 공연을 마지막으로 그룹을 떠나겠다고 발표한다. 당시 매니저인 Malcolm은 그는 해고 당한 것이라고 이야기 하기도 했다. 한편 Malcolm은 브라질로 이동해 전직 열차 강도였던 Ronnie Biggs와 필름 제작을 계속한다. Sid는 헤로인 중독 문제로 이 작업에 참여하지 못하고 Jones와 Cook만이 작업에 참여했다. Malcolm은 Ronnie Biggs를 밴드의 보컬리스트로 싱글 "God Save The Pistols"를 녹음하는데 후에 'No One Is Innocent(A Punk Prayer)'로 제목이 바뀐다. b-side에는 Frank Sinatra의 고전을 커버한 Sid Vicious의 "My Way"를 수록한다.
Malcolm의 필름은 감독 Jullien Temple에 의해《The Great Rock'n' Roll Swindle》이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된다. 필름이 완성되면서 Sid는 그룹의 중심인물이 되어 있었고 그가 다시 뉴욕으로 돌아오기 전 Eddie Cochran의 커버인 "C'mon Everybody"를 녹음한다. 1978년 10월 12일에는 Sid의 여자친구 Nancy Spungen이 첼시 호텔에서 칼에 찔린채 죽어 있었고, Sid는 살인 혐의로 체포된다. Sid는 보석으로 풀려나 있던 동안 헤로인과다 복용으로 고생하다 1979년 2월 2일 아침 시체로 발견된다.
Virgin Records는 이후《Flooging Dead Horse》(헛수고하기)라는 의미심장한 제목의 타이틀로 앨범을 발매하고 1986년 Johnny Rotten은 전 멤버들과 매니저였던 Malcolm과의 법정 소송에서 승리해 잃어버린 이름과 명예를 되찾으며 Sex Pistols와 완전히 결별했다.
그룹은 잠시동안 밴드의 절친한 친구이기도 한 Wally Nightingale을 리드 보컬리스트로 맞아 Swankers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다 Sex Pistols로 개명하면서 Johnny Rotten(vocals), Steve Jones(guitar), Paul Cook(drums), Glen Matlock(bass)의 안정된 라인업을 유지했다.
1976년, 런던을 중심으로 부정기적인 연주활동을 갖는데 Malcolm McLaren이 상업적으로 잘 포장한 헤어스타일, 찢어진 티셔츠, 안전핀 등의 펑크패션은 금새 10대 팬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얻는다. 밴드의 공연은 항상 폭동이 끊이질 않았는데 100 Club Punk Rock Festival에서 Damned의 공연중 시드 비셔스가 날린 맥주병이 깨지며 한 소녀가 눈이 머는 사고가 발생하면서 정점에 달한다.(실제로 그런 사고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그 사실이 불분명하다. 또 하나의 시드 신화라는 얘기도 있다.)
밴드는 곧 EMI와 계약하고 "Anarchy In The UK"를 발표하며 공식적으로 데뷔한다. 한편 Sex Pistols는 런던의 주말 TV연예 프로그램인《Today》에 출연해 네개의 철자로 된 말들을 마구 내뱉는데 이 사건은 다음날 런던의 신문 헤드라인으로 일제히 기사화 된다.(섹스 피스톨즈 TV에서 'FUCK'이라고 하다!)
이로 인해 그룹의 'Anarchy' 투어는 가느 곳마다 취소되기 일쑤였고, 레코드 판매상들은 그들의 앨범 판매를 거부했다. "Anarchy In The UK"는 차트 38위를 기록했으나 오래지 않아 EMI와의 계약을 해지당한다. 1977년, Matlock이 Sid Vicious로 교체되면서 다음달 버킹검 궁전 앞에서 A&M과 계약을 맺게 되는데 1주일 후 A&M은 계약을 취소하고 Malcolm은 단 1주일만에 계약금 40,000파운드를 챙긴다.
이후 당시에는 소규모 레이블이었던 Virgin과 계약을 맺고 "God Save The Queen"을 여왕의 즉위 25년 기념일인 Queen's Jubilee에 발표한다. 라디오 주간 방송들은 일제히 이 곡을 방송금지 시켰지만 NME차트 1위를 기록하고 Johnny Rotten과 그룹 멤버들은 길거리에서 극우주의자들에 의해 폭행을 당하기도 한다. 세번째 싱글 'Pretty Vacant'(Glen Matlock의 작품인)는 금새 Top10에 진입한다. 그리고 그해 겨울 "Holiday In The Sun"이 히트를 기록하면서 모두가 기다리던 데뷔앨범《Nevermind The Bollocks Here's The Sex Pistols》가 발매된다.
이후 실패 투성이의 미국 투어와 함께 다큐멘터리 필름의 제작에 들어가는데 멤버들의 관계에도 서서히 금이 가기 시작한다. 1978년 Rotten은 샌프란시스코에서의 공연을 마지막으로 그룹을 떠나겠다고 발표한다. 당시 매니저인 Malcolm은 그는 해고 당한 것이라고 이야기 하기도 했다. 한편 Malcolm은 브라질로 이동해 전직 열차 강도였던 Ronnie Biggs와 필름 제작을 계속한다. Sid는 헤로인 중독 문제로 이 작업에 참여하지 못하고 Jones와 Cook만이 작업에 참여했다. Malcolm은 Ronnie Biggs를 밴드의 보컬리스트로 싱글 "God Save The Pistols"를 녹음하는데 후에 'No One Is Innocent(A Punk Prayer)'로 제목이 바뀐다. b-side에는 Frank Sinatra의 고전을 커버한 Sid Vicious의 "My Way"를 수록한다.
Malcolm의 필름은 감독 Jullien Temple에 의해《The Great Rock'n' Roll Swindle》이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된다. 필름이 완성되면서 Sid는 그룹의 중심인물이 되어 있었고 그가 다시 뉴욕으로 돌아오기 전 Eddie Cochran의 커버인 "C'mon Everybody"를 녹음한다. 1978년 10월 12일에는 Sid의 여자친구 Nancy Spungen이 첼시 호텔에서 칼에 찔린채 죽어 있었고, Sid는 살인 혐의로 체포된다. Sid는 보석으로 풀려나 있던 동안 헤로인과다 복용으로 고생하다 1979년 2월 2일 아침 시체로 발견된다.
Virgin Records는 이후《Flooging Dead Horse》(헛수고하기)라는 의미심장한 제목의 타이틀로 앨범을 발매하고 1986년 Johnny Rotten은 전 멤버들과 매니저였던 Malcolm과의 법정 소송에서 승리해 잃어버린 이름과 명예를 되찾으며 Sex Pistols와 완전히 결별했다.
차대선 (2004-07-21 02:07:50)
섹스피스톨즈..너무좋다.
조이라이더 (2004-12-05 23:13:49)
aituk
시드가 베이스를 잘치는 줄 알았다.//////
박인화 (2005-05-07 08:49:43)
섹스 피스톨즈의 진가는 그들의 연주 실력이 아니라 엿 같은 시대 상황에 온몸으로 저항한 그 정신이다. 그들의 저항 정신은 수많은 후배 락밴드에게 영향을 끼치지 않았던가...그리고 아직도 그 정신은 유효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김정운 (2006-05-31 17:11:36)
시드잘치진않지만 센스잇다 ㅋㅌㅋ
섹스피스톨즈..너무좋다.
조이라이더 (2004-12-05 23:13:49)
aituk
| 이지혜 (2005-01-01 00:09:38) |
박인화 (2005-05-07 08:49:43)
섹스 피스톨즈의 진가는 그들의 연주 실력이 아니라 엿 같은 시대 상황에 온몸으로 저항한 그 정신이다. 그들의 저항 정신은 수많은 후배 락밴드에게 영향을 끼치지 않았던가...그리고 아직도 그 정신은 유효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김정운 (2006-05-31 17:11:36)
시드잘치진않지만 센스잇다 ㅋㅌ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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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배우로도 유명한 Des Barres와 후에 Blondie의 베이스 연주자로 유명해진 Nigel Harrison가 중심이 되 1971년 결성한 글램록 밴드이다.
Steve Forest (guitar), Rod Davies (guitar), Pete Thompson (drums)등 5명의 멤버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1972년 Tony Edwards에 의해 Deep Purple의 레이블에 스카우트 되어 같은해 Deep Purple의 엔지니어였던 Martin Birch가 프로듀스한 데뷔앨범 <Silverhead>을 발표한다.
데뷔앨범은 에너지 넘치는 헤비사운드의 걸작앨범이었지만 다른 글램록 밴드들처럼 음란한 행동과 공격적인 태도로 언론의 공격을 받았으며 이로 인해 Steve Forest (guitar)가 밴드를 그만두게 된다. 이후 새로 영입된 기타리스트 Robbie Blunt와 함께 한 다음앨범 <16 & Savaged>은 전통적인 하드록에 근접한 사운드를 만들어 냈으며, 앨범발표와 함께된 투어로 인해 1974년에는 일본과 함께 글램록의 주요도시였던 뉴욕에서도 많은 팬층을 확보하게 된다.
이 기간동안 Des Barres는 소위 '수퍼그루피'라고 불리웠던 배우 Pamela Miller를 만나게 되었고 이로 인해 밴드는 오래 가지 않아 해산을 하게 되고 만다.
Des Barres는 Pamela Miller와 결혼했고 Nigel Harrison은 Doors의 멤버였던 Ray Manzarek의 솔로앨범에 참여하게 된다. 이후 Nigel Harrison은 Ray Manzarek과 Nite City라는 밴드를 결성하기도 했으며 70년대 말부터는 Blondie로 유명해지게 된다.
Robbie Blunt는 Chicken Shack이라는 밴드를 결성하지만 좋은 반응을 얻어내는데 실패하고 후에 Robert Plant의 히트싱글인 'Big Log'에 참여하며 이름을 얻는다. Des Barres는 80년대 초반 Detective라는 Led Zeppelin풍의 밴드를 결성해 Swansong에서 앨범들을 발표했고, Steve Jones, Andy Taylor같은 펑크/뉴웨이브 연주인들과 함께 솔로활동을 해가며 배우로도 어느정도 성공을 거둔다. 80년대 중반에는 Power Station에 참여해 'We Fight For Love(영화 Commando의 주제가)'를 녹음하고 Power Station의 순회공연에 참여하기도 했다.
Steve Forest (guitar), Rod Davies (guitar), Pete Thompson (drums)등 5명의 멤버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1972년 Tony Edwards에 의해 Deep Purple의 레이블에 스카우트 되어 같은해 Deep Purple의 엔지니어였던 Martin Birch가 프로듀스한 데뷔앨범 <Silverhead>을 발표한다.
데뷔앨범은 에너지 넘치는 헤비사운드의 걸작앨범이었지만 다른 글램록 밴드들처럼 음란한 행동과 공격적인 태도로 언론의 공격을 받았으며 이로 인해 Steve Forest (guitar)가 밴드를 그만두게 된다. 이후 새로 영입된 기타리스트 Robbie Blunt와 함께 한 다음앨범 <16 & Savaged>은 전통적인 하드록에 근접한 사운드를 만들어 냈으며, 앨범발표와 함께된 투어로 인해 1974년에는 일본과 함께 글램록의 주요도시였던 뉴욕에서도 많은 팬층을 확보하게 된다.
이 기간동안 Des Barres는 소위 '수퍼그루피'라고 불리웠던 배우 Pamela Miller를 만나게 되었고 이로 인해 밴드는 오래 가지 않아 해산을 하게 되고 만다.
Des Barres는 Pamela Miller와 결혼했고 Nigel Harrison은 Doors의 멤버였던 Ray Manzarek의 솔로앨범에 참여하게 된다. 이후 Nigel Harrison은 Ray Manzarek과 Nite City라는 밴드를 결성하기도 했으며 70년대 말부터는 Blondie로 유명해지게 된다.
Robbie Blunt는 Chicken Shack이라는 밴드를 결성하지만 좋은 반응을 얻어내는데 실패하고 후에 Robert Plant의 히트싱글인 'Big Log'에 참여하며 이름을 얻는다. Des Barres는 80년대 초반 Detective라는 Led Zeppelin풍의 밴드를 결성해 Swansong에서 앨범들을 발표했고, Steve Jones, Andy Taylor같은 펑크/뉴웨이브 연주인들과 함께 솔로활동을 해가며 배우로도 어느정도 성공을 거둔다. 80년대 중반에는 Power Station에 참여해 'We Fight For Love(영화 Commando의 주제가)'를 녹음하고 Power Station의 순회공연에 참여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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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x Pistols의 두 멤버 Steve Jones와 Paul Cook의 프로젝트 형식으로 출발한 Professionals는 Ray McVeigh(guitar/voclas)와 Vic Goddard와 Subway Sect를 거친 베이스 연주자 Paul Meyers를 밴드멤버로 끌어모아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한몸에 받으며 데뷔LP를 발매하지만 그 결과는 아주 실망스럽게 나타난다.
이후 밴드는 여러곡의 싱글 히트곡을 실은 두번째 앨범을 발표하지만 역시 비평이나 대중들의 주목을 받는데는 실패하고 만다.
이후 밴드는 여러곡의 싱글 히트곡을 실은 두번째 앨범을 발표하지만 역시 비평이나 대중들의 주목을 받는데는 실패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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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샌프란시스코에서 결성된 Avengers는 Dils, Crime등 같은 지역 출신의 밴드들과 함께 샌프란시스코를 대표하는 펑크/하드코어 밴드로 이름을 날렸다. 초기멤버는 Penelope Housten(vocals), Greg Weatermark(guitar), Jonathan Postal(bass), Danny Furious(drums)였는데 이중 Housten과 Furious를 제외한 나머지 멤버들은 수시로 얼굴이 바뀌었다.
1977년 발표된 데뷰싱글 "Car Crash/We Are The One/I Believe In Me"에서 밴드는 파워풀한 펑크 사운드를 선보였으며 1979년, Sex Pistols의 기타리스였던 Steve Jones가 프로듀스한 EP [The American In Me(aka White Nigger)]까지 짧은 활동기간 동안 깊은 인상을 남겼다.
1977년 발표된 데뷰싱글 "Car Crash/We Are The One/I Believe In Me"에서 밴드는 파워풀한 펑크 사운드를 선보였으며 1979년, Sex Pistols의 기타리스였던 Steve Jones가 프로듀스한 EP [The American In Me(aka White Nigger)]까지 짧은 활동기간 동안 깊은 인상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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